[영화읽기] 영화인에게 가위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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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영화인에게 가위질이란
  • 승인 2023.10.20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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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거미집
감독 : 김지운출연 :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장영남,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감독 : 김지운
출연 :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장영남,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영화계는 팬데믹이 끝나면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관객들은 이미 OTT에 익숙해진 탓인지 극장을 찾는 경우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실례로 황금 같은 6일간의 추석 연휴 기간에 유명 스타들을 앞세운 한국영화 3편이 개봉되었지만 3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보여줬다.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영화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해 본다.

1970년대 꿈도 예술도 검열 당하던 시대,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던 김감독(송강호)은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대한 영감을 주는 꿈을 며칠째 꾸고 있다. 그대로만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는 예감에 그는 딱 이틀 간의 추가 촬영을 꿈꾼다. 그러나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촬영을 반대한다.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한 김감독은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까지 불러 모아 촬영을 강행하지만, 스케줄이 꼬인 배우들은 불만투성이다. 설상가상 출장 갔던 제작자와 검열 담당자까지 들이닥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개인적으로 추석연휴 개봉작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이었지만 관람평점을 비롯하여 여러 후기 등을 살펴봤을 때 호불호가 상당히 심했던 작품이 <거미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이고, 검열이라는 낯선 단어와 함께 세트장에서 영화를 찍는 모습 등등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영화를 알고 있고, 영화 속 캐릭터의 모티브인 신상옥 감독과 김기영 감독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피식 웃으며 볼 수 있는 한 편의 소동극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초심을 되찾고자 하는 김지운 감독의 마음이 많이 반영된 듯이 그의 초기 작품인 <조용한 가족>, <반칙왕> 같은 대사 중심의 위트 있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그의 페르소나인 송강호가 함께 하면서 영화적 시너지는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평가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딱히 어떤 주제를 콕 짚어 전하기보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한 영화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정도로 이해해도 충분할 것 이며, 깜짝 출연한 정우성의 대사 속에 다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단지 그것을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던 70년대를 배경으로 예나 지금이나 영화감독들이 짊어져야 하는 영화 제작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작품에 대한 열정을 왁자지껄하게 표현했다는 것으로 본다면 영화가 그리 모호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흑백과 컬러로 구분되어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와 제작과정 장면에서 톤을 달리해서 연기를 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을텐데 워낙 내공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전혀 어색함 없이 진행되면서 <거미집>만의 특급 연기 맛집을 보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아이돌 출신인 정수정의 연기가 다른 배우들과 제대로 합을 이루어내며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거미집> 같은 아날로그식의 소동극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명품 배우들의 연기를 느끼며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를 엿보는 마음으로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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