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상냥한 여자아이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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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상냥한 여자아이를 거부하다
  • 승인 2023.10.2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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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미스 아메리카나
감독: 라나 윌슨출연: 테일러 스위프트
감독: 라나 윌슨
출연: 테일러 스위프트

넷플릭스는 음악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자주 만든다. 가령 비욘세를 예로 들자면 비욘세가 아이를 낳고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라 가능한 것인가 싶어 남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연예인도 이런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들었다. 실제로 어제 검색해보니 송가인도 이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단순히 콘서트 실황을 보여주는 것이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이외에 무슨 감흥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단순히 가수 홍보일 뿐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럼에도 결이 다른 작품이 두 개 있었다. 비욘세의 ‘비욘세 홈커밍’과 테일러 스위프트의 ‘미스 아메리카나’다.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그 중 후자다.

실은 필자 역시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가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사람들 치고는 팝을 듣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자국문화콘텐츠가 강한 우리나라 특성상 테일러 스위프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도 꽤나 있으니), 그다지 취향의 노래는 아니다. 물론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도 그는 발매하는 모든 곡마다 빌보드차트를 씹어먹는 리빙레전드다. 대략 현존하는 제일 잘나가는 팝스타를 언급해봐라 할 때 테일러 스위프트를 언급해도 무리는 아닐 정도. ‘미스 아메리카나’는 그런 리빙레전드, 미국의 상징이 된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원래 컨트리송으로 데뷔했다. 어색하지만 우리나라로 비유를 하자면 트로트를 잘 부르는 예쁜 소녀 가수로 데뷔해서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을 하는 탑스타가 되었다고 보면 그나마 비슷할 것 같다. 정동원으로 데뷔해서 BTS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컨트리송의 특성상 팬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스타는 원래 인기가 많아질수록 사소한 한 마디로도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기 쉽기 때문에, 테일러는 공식석상에서 말을 가려야 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도 보수팬층을 유지하기 위해 공식석상에서는 몸을 사렸다. 그런 ‘공격적인’ 태도는 ‘상냥한 여자아이(nice girl)’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니까. 그저 예쁘게 웃고, 사랑스럽게 노래를 하는 것이 상냥한 여자아이에게 주어진 덕목일 뿐이니까.

그런 테일러에게 고뇌의 시간이 찾아온다. 카니예 웨스트에게서 시작된 일방적인 사이버불링으로 사랑스런 소녀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봐야 했다. 과연 세상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완벽한 소녀가 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상냥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말을 하지 못한 채, 강박적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홀로 상처를 붙들고 사라지는 것이 맞는가 라는 고민이다.

그리고 테일러는 상냥하고 완벽한 소녀를 거부했다. 소녀는 ‘테일러스네이크(TaylorSnake)’로 다시 태어나 정면에서 맞서기로 했다. 테일러는 ‘Look What you Made Me Do’ 노래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테일러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그녀는 죽었거든요”. 그리고 테일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게 바로 나야. 섭식장애로 고통받으면서 비쩍 마른 몸이 아니어도, 다소 ‘불편한’ 이야기를 해도, 내 잘못이 아닌 일에 미안하다고 습관처럼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게 나니까.

테일러 스위프트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미화된 이야기가 아닐까 삐딱한 시선으로 봤던 것도 사실이다. 테일러는 완벽한 성인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 멋진 구석이 있다. 테일러가 그렇듯,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도 멋질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 충분한 작품이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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