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황궁’이라는 폐허 속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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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황궁’이라는 폐허 속 유토피아
  • 승인 2023.11.0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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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콘크리트 유토피아
감독 : 엄태화출연 :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감독 : 엄태화
출연 :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필자는 단독주택에서 수십년을 살다가 재개발이 되면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래서 이사 초기 아파트에 대한 낯선 풍광이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했고, 약간의 스트레스까지 느낄 정도였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었는데 다행히 우리집 멍멍이들 덕분에 여러 이웃들을 만나게 되어 지금은 편안한 상황이 되었고, 원래 살던 동네도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역변을 했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주거형태가 된 아파트는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안식처이지만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는 영끌을 하면서도 얻어야 하는 투자 용도로까지 변질되며 연일 희비쌍곡선 위에 놓여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대지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다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 남았다.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자 입주민들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된 그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로 뽑힌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덕분에 지옥 같은 바깥 세상과 달리 주민들에겐 더 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된 황궁 아파트.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 그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유쾌한 왕따>라는 웹툰을 각색한 작품으로 지난 8월에 개봉하여 38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사실 여름 성수기에 개봉된 작품답지 않게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 관객들의 호불호가 있기는 했지만 영화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 영화의 묵직한 주제는 그 어떤 작품보다 묘하게 빠져드는 몰입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그로인해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 특히 성경 속 이야기와 비교하면서 천천히 뜯어본다며 색다른 영화감상 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무난히 볼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솔직해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도의적인 상황에서 내 머리는 영화 속 박보영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상황에 닥치게 되면 나도 황궁 아파트 입주민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

물론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단순히 재난 영화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대지진과 전쟁 등의 각종 재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영화 속 상황이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수 있다보니 마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과 전반적으로 어두운 화면으로 전개되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어떤 역할을 하든 그냥 그 사람처럼 보이는 연기의 달인 이병헌을 비롯하여 박서준, 박보영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이다. 아파트라는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유토피아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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