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함께 읽는 동의신정(20) 자살시도자에 대한 한국 내 임상연구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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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함께 읽는 동의신정(20) 자살시도자에 대한 한국 내 임상연구가 시급하다
  • 승인 2023.11.16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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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영

권찬영

mjmedi@mjmedi.com


권찬영
동의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조교수

한국은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 26.0명이라는 높은 자살률을 가진 국가로,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자살률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고위험군을 빠르게 선별하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자살 예방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자살예방정책 수립 기조 상, 프로그램의 효과성이 임상연구를 통한 근거로 확립되어야 그것이 국가의 자살예방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

자살시도자(suicide attempter)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자를 의미하며, 이후 자살을 재시도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반복적인 자살 시도는 더 심한 정신병리와 스트레스 취약성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므로 이 취약군에 대한 효과적이며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34권 3호에는 WHO-ICTRP에서 확인 가능한 임상시험 등록정보들을 분석하여, 한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자살시도자들에 대한 무작위대조군연구가 어떤 설계로 시행되었는지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박민령, 이지원, 황인준, 권찬영. 자살시도자에 대한 무작위대조군연구의 등록 현황 분석: WHO-ICTRP를 중심으로.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23;34(3):213-234.

 

2023년 4월 16일까지의 임상시험 등록정보 중, 포함기준에 부합하는 68건이 분석 대상이 되었다. 주요 결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살시도자들에 대한 중재를 개별 중재와 집단 중재로 구분할 때, 개별 중재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것은 자살시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개별 심리적 중재에,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심리치료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임상시험이 등록된 대륙별 분석에 따르면 북아메리카 (31건)와 유럽 (18건)에서의 연구가 가장 많고, 아시아는 6건으로 적은 편이었는데, 이 6건 중에도 한국에서 등록된 임상시험은 없었다. 또, 개별 중재의 내용을 보면 요가 같은 전통의학에 기반한 중재가 사용된 사례가 있지만, 한의학, 중의학, 한방의학 등에 기반한 중재는 사용된 사례가 없었다.

즉 이 연구의 결과는 한국에서 높은 자살률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 고위험군인 자살시도자들에 대한 임상연구, 그리고 그 결과에 기반한 근거 기반 프로그램의 도입이 매우 부족함을 보여준다. 또한,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는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이 취약군에 대한 임상시험이 양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문화적 관련성이 반영된 중재 역시 부족하여, 현재 자살시도자들에 대한 예방적 중재가 갖는 근거수준의 빈약함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 전통의학 역시 중요한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특성이자, 일부 국가의 의료체계에 편입되어 관련 면허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동아시아 전통의학 이용률이 매우 높으므로, 이 국가들의 주요한 의료자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즉, 이 의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기간 발전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철학과 이론을 기반으로 하며, 집단 속 개인으로 살아가는 동양적 정서 등 문화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고, 개인의 신체, 정서, 사회적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므로, 이 문화권 내의 개인의 정신건강 관리에 적합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중국, 대만 등의 국가에서는 이미 중의학, 한의학 등이 국가 의료시스템에서 면허를 받은 의료인에 의해 의약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 의료인력들을 국가의 자살 예방 정책에 활용하는 것 역시 효율적인 인적 자원의 활용 측면에서 유리할 것이다.”

더불어 이 논문에서 제안하는 관심 집단은 군인이다. 해외, 특히 미국의 경우 퇴역군인에 대한 연구와 지역사회적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번 연구에서도 군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등록정보가 4편 포함되어 있었다. 이 집단의 정신건강 문제의 높은 유병률을 고려할 때, 군인 중 자살시도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발견은 아니다. 여기에 저자들은 한국의 징병제 환경, 군대 내 폐쇄적인 환경 등 한국 군인들의 상황에 맞는 연구가 설계될 수 있을 것이라 고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 한의계에서 이들에 대한 임상시험 또는 의료적 지원을 시행할 경우, 이미 한방신경정신과전문의를 포함한 한의사 인력이 징병제에 따라 군의관 등으로 복무하고 있으며, 우울증에 대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재난 트라우마의 한의사 진료 매뉴얼 등이 개발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인적 및 지적자원을 활용한 한의 인력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자살시도자에 대한 임상연구는 윤리적인 고려하에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거짓 치료나 대기군이 아닌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또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프로그램이나 개별 중재를 활성 대조군으로 사용하는 등의 고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집단에 대한 임상연구의 어려움이 임상연구의 부재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시급함과 함께, 이 논문의 저자들이 고찰한 것처럼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면서, 기존에 자살예방정책의 관점에서 활용되지 않아 온 한의 임상의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임상연구가 설계 및 시행되어, 한의 인력이 한국의 높은 자살률 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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