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느린 형태의 안락사, 수면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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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느린 형태의 안락사, 수면부족
  • 승인 2023.11.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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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마음은 여전히 철없는 이팔청춘이지만, 몸은 이제 갓 환갑을 넘겼음에도 팔순 전후의 노인네로 느껴질 때가 최근 부쩍 늘었습니다. 칠규반상(七竅反常)까진 아닐지라도 우선 근력이 예전 같지 않고, 소변줄기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걸 보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잠이 영 시원치 않거든요. 자리에 들어 5분 내 곯아떨어지기 힘들뿐더러 도중에 깨는 횟수도 많아졌는데, 그 때문인지 벌건 대낮에 병든 병아리마냥 꾸벅꾸벅 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는 빨리 숙면 프로젝트를 가동해야겠죠? 그 첫걸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Why We Sleep)』입니다.

매튜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지은이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수면전문가인 매튜 워커(Matthew Walker)입니다. 그는 영국 노팅엄대학교에서 신경과학 전공 후 런던 의학연구위원회에서 신경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하버드 의대·UC 버클리 등의 강단에 섰으며, 특히 버클리 심리학과에 ‘인간 수면 과학 연구소(Center for Human Sleep Science)’를 설립한 이후부터는 수면이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주된 연구 주제로 삼아 잠 관련 논문을 봇물 터트리듯 쏟아냈더군요. 게다가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반 대중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는 덕택에 자타가 공인하는 ‘수면 외교관(Sleep Diplomat)’으로 불린다던데, 책장 넘길 때마다 살포시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그의 재치와 유머 감각을 감안하면 더 적합한 별명이 없을까 고민할 정도입니다.

500페이지에 이르는 꽤 두꺼운 책은 4부 16장으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는 잠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 정의부터 따지며 잠에 관한 신비를 벗기는 내용입니다. 동물들은 잠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자는지, 각성과 수면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해외여행 시 왜 미주로 갈 때가 유럽으로 갈 때보다 새 시간대에 순응하기 어려운 지, 평생에 걸친 잠의 변화는 어떠한지 등을 밝혀내지요. 2부는 수면과 수면부족의 장단점 및 치명적인 점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사회적·경제적·신체적·행동적·영양적·언어적·인지적·정서적으로 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지요. ‘미인은 잠꾸러기’와 사당오락(四當五落;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의 진위를 확인하시길…. 3부는 꿈으로의 초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왜 꿈을 꾸는 건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비틀즈의 예스터데이·자각몽(lucid dreaming)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꿈과 창의성의 관계를 조명합니다. 4부에서는 불면증을 위시한 각종 수면장애와 그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몽유병·발작수면·치명적 가족성 불면증 등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고, 숙면을 방해하는 각종 요인(현대 조명·알코올·환경 온도·강제 각성 등)들을 명백히 드러내며, 수면제는 수면잠복기만 미미하게 개선할 뿐이라는 사실 또한 알려주지요. 아울러 느린 형태의 자기안락사에 다름 아닌 수면부족이 글로벌 유행병처럼 번지는 요즘 시대에 적절한 대처법은 과연 무엇인지 묻습니다. 개인적·교육적·조직적·정책적·사회적으로 범위를 확대하면서….

내년 총선을 계기로 ‘눈떠보니 선진국’으로 재진입하기를 꿈꾸는 게 헛된 꿈이 아니기를….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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