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18) 소아과 없는 촌에서 아이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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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18) 소아과 없는 촌에서 아이 키우기
  • 승인 2023.12.2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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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절 살려주시겠어요?” 소년은 흐느끼며 속삭였다. - 카프카 <시골의사> 중.

 

시골로 막 이사를 왔던 2018년 여름, 아이가 많이 아팠다. 여러 병원에서 받은 진단이 각기 달랐던 탓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기관지 천식이 악화되었는데, 당시에는 호흡기 치료기를 집에 구입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시에서야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지면 언제든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외래진료만 받고 오면 집에서 잘 지냈으니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그날은 저녁부터 아이가 무척 힘들어했다. 잠들 무렵에는 부쩍 숨쉬기가 어려워 흉곽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천명음이 심했다. 아침까지만 어떻게 버티다 순천 소아과에 가보자 생각했었지만 상태가 시시각각 악화되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새벽 1시쯤 부랴부랴 읍내에 딱 하나 있는 응급실로 향했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명색이 응급실인데 있을 건 다 있겠거니 맘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들어섰을 때, 접수실 직원과 응급실 간호사의 당황스럽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급하게 당직실에서 자고 있던 의사를 콜 했지만, 그는 와서 아이 바이탈만 살펴본 후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고 했다. 당연히 응급실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고 찾아온 아이 부모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그냥 호흡기치료만 해주면 되는데, 읍내 응급실에는 바로 그 호흡기 치료기도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촌이라지만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그날 응급실에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도로 나오면서 한밤중에 군청 로타리를 뺑뺑 돌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애가 탔다. 이 시커먼 밤에 당장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마땅치가 않아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마음이 무너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근무하던 병원에서 호흡기 치료기를 빌려 썼더라면 별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요령이 없었다. 인근 남원의료원 응급실에서도 소아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했었다. 그 밤에 아이는 결국 순천 소아과 전문병원에 입원했고 우리는 바로 호흡기 치료기를 구입했다. 인터넷 최저가 같은 걸 검색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데서나 눈에 띄는 첫 번째 의료기상에서 주라는 대로 주고 샀다. 그 기계가 마치 생명의 동앗줄 같았다.

촌에도 맘카페는 있다보니, 갓 귀농 혹은 귀촌한 엄마들이 카페에 가입 인사를 한 후 제일 처음 남기는 질문 역시 대개는 “아이 아플 때 어디로 가면 되나요?”와 같은 종류이다. 이곳에는 제대로 된 응급실도 없지만, 소아과 의원도 없다. 있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그냥 없었다. 2018년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에도 없었고, 그전에도 없었다. 노인 인구는 많지만 젊은 사람은 귀하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더 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소위 선배 엄마들은 그런 글이 게시될 때마다, 순천으로 가라, 남원이 낫다, 읍내 내과에 가도 급한 처치는 가능하다, 보건소 선생님이 잘 보더라 등등 백가쟁명을 하곤 한다. 특히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를 키우기에 시골은 극강의 난이도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소에 근무하는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은 가뭄의 단비같이 귀하고도 귀한 존재다. 전문의를 따고 공보의가 되다 보니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병원의 최신 지견으로 잘 업데이트 되어 있기까지 하다. 지난 5년 동안 선생님 세 분이 우리 아이를 진료해주셨는데, 특히 첫 번째 선생님은 서울 토박이에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분이었다. 아토피에 천식까지 있어서 유난히 진료도 자주 받는 아이라 친밀하기도 하고, 또 아이가 자기 증상을 또박또박 말하는 게 기특해 보였는지 유독 애착을 갖고 대했다. 선생님이 떠나기 직전, 필요한 약들을 넉넉하게 처방해주면서 아이에게 신신당부했다. 아프면 꼭 서울로 가야 한다고. 여기저기 지방에서 돌아다니며 고생하지 말고, 좀 이상하다 아프다 싶으면 꼭 서울로 오라고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당부를 했다. 그리고 똑똑하니까 공부를 잘 해서 지방 말고 꼭 서울을 오라고도 말했다.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게다가 여러 번, 특히 마지막 날엔 부족한 약이 없는지 처방전 확인하며 전화통화로까지 서울 이야기를 남겼다.

선생님은 정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그것도 잔병치레가 잦은 아이를 키우는 게 여러모로 안심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마운 기억이고 잊지 않아야 할 귀한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아니라 어떤 아이라 하더라도, 시골이든 도시든, 섬에 살든 뭍에 살든, 아픈 아이가 필요한 처치를 적절한 때에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서울로 가지 않더라도, 시골에 살면서도, 부모도 소아과 의사도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애를 태우는 그런 밤은 누구에게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마도 소아과 의사들이 줄고 있다고 하니, 당장 이런 시골 공보의 인력부터 사라지는 게 아닐까 대번 걱정이 된다. 우리집 어린이는 제법 많이 자라서 이제 그전만큼 보건소 소아과 선생님을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이런 촌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니 말이다. 병의원은 아니더라도 보건소에서라도 소아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으니 지난 5년 이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우리 말고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신유정 / 인류학박사,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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