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화처방과 약배송, 가능과 불가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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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화처방과 약배송, 가능과 불가능의 역사
  • 승인 2024.02.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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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승

정혜승

mjmedi@mjmedi.com


정혜승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정혜승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증상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 즉 문진이다. 그렇다면 사정에 따라 환자와 직접 물리적으로 대면하지 않더라도 전화나 기타 통신 장치로 환자를 진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이런 식의 진찰이라도 해서 환자의 급한 요청을 듣고 신속한 처방을 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를 위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실제 타 국가들에서는 전화를 통한 상담이나 처방 등이 실시되고 이러한 진료에 비용을 청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소위 ‘비대면’ 또는 ‘원격’ 진료는 금지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일단, 의료법 제33조 제1항은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일정한 예외사유가 없으면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예외사유 중에 환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의료기관 외에서 진료할 수 있는 경우가 포함된다. 바로 이 조항의 반대해석을 근거로 보건복지부는 의료인과 환자는 반드시 의료기관 내에서 만나서 진료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유권해석을 해왔다.

한편, 의료법 제34조의 제목이 ‘원격의료’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의료인 간 원격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진료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어떤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정하고 있을 뿐, 의사와 환자 간 진료에 대한 규정은 아니다. 그리고 의료법 다른 규정들을 살펴보아도 문언상 ‘의사가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내용은 없다. 바로 이 틈새를 이용하여 일부 의사들이 전화로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전을 발행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처음 검찰은 의료법 제17조 제1항을 근거로 의사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시도했다. 이 조항은 처방전 발행에 관한 것인데, 법문언 상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발행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기에 검찰은 대면하여 진찰하지 않은 것은 ‘직접’진찰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조항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전화로 진찰을 하였다고 하여 ‘직접 진찰’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대법원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목적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용할 수 있는 점,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운용을 통하여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거나 보험수가를 조정하는 등으로 비대면진료의 남용을 방지할 수단도 존재하는 점, 첨단기술의 발전 등으로 현재 세계 각국은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까지도 고려하여 판단하였다.

그러자 검찰은 기소의 근거 조항 위에서 언급한 의료법 제33조 제1항으로 바꾸었다. 다이어트 한약을 처방하는 한의원에서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전화로 문진을 실시한 다음 한약을 택배 배송한 사례에서, 전화로 환자를 진찰하는 경우 의사는 의료기관 내에 있더라도 환자가 의료기관 내에 있지 아니하므로 위 법조항에 반한다는 취지로 해당 한의사를 기소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기소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고 현재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은 진료는 판례에 따라 공식적으로 ‘유죄’다. 또한,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진찰했음에도 처방전을 발행하고 대면진료와 동일한 진찰료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사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진찰은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였다고 보아 진찰료를 환수처분했고 법원은 이 환수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보건복지부는 돌연 ‘보건복지부 공고’라는 형식을 빌어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방안」을 발표했다. 보통 국민에 대한 효력을 가지는 사항은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 대통령이 발하는 대통령령(시행령), 각 행정부처가 발하는 부령(시행규칙)이 있고 이 하위로 ‘고시, 공고, 지침’ 등이 있다. 그리고 고시나 공고는 상위법령의 효력보다 앞설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위 보건복지부 공고는 그동안의 의료법의 해석과 판례의 태도를 모두 제치고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코로나19 감염병 위기대응 심각단계가 발령되는 기간 동안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경우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증상이나 환자의 범위 제한도 전혀 없었고 오로지 의사가 재량껏 비대면으로 진료해도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진료가 가능했다. 이 공고에 따라 감염병 위기대응 심각단계가 발령된 약 3년의 기간 동안 전 진료분야, 전 환자에 대한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고 비대면 진료를 수월하게 하는 어플리케이션 등도 다수 개발되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굳이 비대면 진료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증상이나 환자들에 대해서도 비대면진료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코로나19의 위기단계가 하강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즉시 위 공고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점을 밝혔고 이제는 다시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돌아가 환자와 직접 의료기관 내에서 대면하고 진료하지 아니하면 의료법 제33조 제1항 위반죄로 기소될 수 있다.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의사 면허 자격 정지 처분까지 받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정부도, 의료계도 어느 정도 범위에서 비대면진료가 필요함을 인지하게 되었으나 의료법이 개정되어 비대면진료가 가능해지기까지는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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