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 12경락이 있듯 태국 전통의학에도 경락이 존재한다. ‘센 라인(Sen lines)’이라 불리는 10개의 에너지 라인은 각각 특정한 속성을 대표하거나 신체 특정 부위와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또한, 각 라인에 배속된 경혈 역시 존재한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경혈은 오직 왕실이 인정하는 기관에서 자격을 취득한 사람만이 알 수 있고,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응용되는 곳이 마사지이다. 태국 전통 마사지는 대중 마사지와 왕실 마사지 두 종류가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경혈의 사용 여부에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태국 여행을 가서 받는 마사지는 대부분 대중 마사지이다. 몸을 전체적으로 강하게 주무르고 다양한 자세로 관절 가동성을 높여주는 방식이라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러나 왕실 마사지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관절을 움직여 소리를 낸다거나 팔꿈치 등을 이용해 강하게 누르지 않는다. 대신 앞서 말한 경혈점을 지그시 누르거나 자극하는 방식이다.

방콕 시리랏 병원은 왕실 병원이기 때문에 왕실 타입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마침 통역 업무가 비는 날이 있어 왕실 타입 마사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예약한 시간에 가면 가장 먼저 혈압을 잰다. 수술력, 가족력 등을 포함한 문진표를 작성하고, 담당 의사와 특별히 불편한 곳이나 아픈 곳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다.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이 되면 데스크에서 바구니를 하나 주는데, 작은 안내 카드에 나와있는 대로 옷을 갈아입고 배정된 베드로 이동하면 된다. 이동할 때마다 간호사들이 매번 안내해 주는 우리나라 병의원 시스템도 좋지만, 한 번에 동선을 안내해 주는 태국 시리랏 병원의 시스템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고 배정된 베드로 들어가니 아까 본 담당 의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지는 정말로 경혈점만을 이용하여 진행되었다. 두 손에 체중을 실어 지그시 누르는 방식으로, 압박받는 부분이 일시적으로 허혈상태가 되었다가 손을 뗄 때 피가 쫙 도는 느낌이 들며 새로운 차원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찜질도 동그란 면포를 경혈점에만 살짝 데었다 다시 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잠들지 않고 모든 과정을 잘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기 일쑤였다. 그만큼 몸이 자연스레 이완되고 편안해지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마사지와 함께 치료실 환경 역시 인상적이었다. 모든 창문에서 건물 중정의 푸릇한 나무를 볼 수 있었고, 바닥은 물론 벽과 천장까지 원목으로 되어있어 베드에 눕는 순간부터 편안함이 느껴졌다. 또, 베드가 마루 위에 펴진 매트리스 형태여서 환자 입장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점이 새로웠다. 다만, 의사는 무릎을 꿇고 치료를 해야 한다. 좌식 생활과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가 익숙한 태국이기 때문에 이런 치료 환경 구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태국 병원에서 왕실 마사지를 받았다는 사실도 특별했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환자가 되어보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의학과 비슷하면서도 태국만의 문화적 요소를 품고 다르게 발전해 온 태국 전통의학을 직접 경험해 보니 한의학과 태국 전통의학 간의 앞으로의 교류가 더욱 기대된다.

★diary’s tip – 시리랏 병원에서 왕실 마사지 받으려면?

마사지는 모두 예약제로 진행되고, 병원에 직접 전화하여 시간을 잡으면 된다. 예약이 어렵지는 않으나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적어도 3~4일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 클리닉 명칭: Siriraj Applied Thai Traditional Medicine

- 태국 전화번호: 02-4191700

- 운영시간: 매일 오전 8시 ~ 오후 8시

- 대략적인 가격: 한화 2~7만원 (프로그램에 따라 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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