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의료에도 노후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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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의료에도 노후준비가 필요하다
  • 승인 2024.03.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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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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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mjmedi.com


도서비평┃노인을 위한 의학은 있다

최근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고령자를 위한 의료, 노년의학의 수요가 커지는 상황이다. <노인을 위한 의학은 있다>는 아직은 낯선 노년의학에 대한 개념과 그에 필요한 역량을 담은 책이다.

​​​​​​​히구치 마사야‧우에무라 타케시 지음, 소리타 아츠시 감수, 김성혁 옮김, 군자출판사 펴냄
히구치 마사야‧우에무라 타케시 지음, 소리타 아츠시 감수,
김성혁 옮김, 군자출판사 펴냄

“고령자를 케어하기 위해 특화된” 노년의학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1942년 학회(미국노년의학회)가 설립되었고 7천 명 이상의 전문의가 있는 진료과목이다. 노년의학의 대상은 단순히 65세 이상의 환자라기보다는 1) 기능장애 혹은 Frailty(허약, 노쇠)에 해당하는 고령자, 2) 환자의 가족이 간병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상황, 3) 고령 환자와 그 가족이 여러 전문과에 내원하며 복잡한 치료를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환자가 해당된다(미국 노년의학회 기준).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고령 환자 수에 비해 노년의학 전문가 수 자체가 매우 적으며 공식적인 전문의(Geriatrician)제도 또한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쓰인 이 책에서도 노년의학과 의사만으로 고령 환자를 모두 커버할 수는 없기에 고령 환자를 접하는 모든 의료진이 고령 환자 진료의 역량을 갖출 것을 강조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소개하는 고령 환자의 진료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 중 5Ms와 DEEP IN은 모든 사례에 두루 활용된다. 5Ms는 사고 정지를 예방하고 고령 환자의 전체를 부감俯瞰하기 위한 도구이다. 5Ms란 인지/정신Mind/Mental, 가동성Mobility, 투약Mediciation,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Multi-complexity, 가장 중요한 것Matters most이다. 5Ms를 활용한 사고의 사례를 보자면 혈압이 높아진 90세 환자를 보는 경우 단순히 혈압약을 조절하는 것 뿐 아니라 1) 인지 : 환자가 인지증-치매-의 영향으로 복약을 제대로 못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둠, 2) 가동성 : 환자의 낙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처방, 3) 투약 : 환자가 추가로 진통제를 임의 복약했을 가능성의 검토, 4)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 : 환자의 다른 질환에 의해 고혈압이 생겼을 가능성의 검토, 환자의 생활비나 의료비 등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의 검토, 5) 가장 중요한 것 : 혈압을 ‘정상 수치’로 조절하는 것이 환자의 자립생활 기간 연장에 도움이 될지를 살피는 식이다.

DEEP-IN는 “눈 앞의 고령자와 그 주변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 진료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초진 시에 인지장애Dementia, 우울Depression, 섬망Delirium, 시력Eye+청력Ear, 신체기능Physical function(낙상Fall), 실금Incontinence, 영양Nutrition를 평가하여 기능 저하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도구들과 활용 사례, 고령자에게 흔한 낙상이나 경관영양 등과 관련된 연구 결과, 환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법 등 다양한 면에서 고령자 진료의 역량을 높여준다.

고령화 사회는 한의학의 기회일까? 한의학은 침, 뜸, 추나 같은 비 약물적인 강력한 치료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의 특성인 정체관념整體觀念도 노년의학에서 필요로 하는 횡단적 관점과 어우러진다. 많은 한의사가 좀 더 주의와 시간을 기울인다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노년의사가 될 자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료인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우선 환자의 인식이 있다. 의사가 약을 주지 않고 빼거나 몇 가지 불편함에 대해서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두자고 한다면 환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노력 끝에 환자의 신뢰를 얻고 나면 이제 환자를 둘러싼 세계-환자의 가족, 요양보호사, 환자와 관련된 기존 치료를 해 온 다른 의료인 등-와 부딪히게 될 것이다. 노년의학은 질환뿐 아니라 환자의 삶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만큼 다직종(간호사나 사회복지사, 약사 등) 간 연계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함께 있을 때에 온전할 수 있겠다.

변화로 가는 길을 막는 또다른 요인, 가장 클 수도 있는 요인으로는 경제적인 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 제도에서 환자의 약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경제적 대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노력과 시간의 대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선의로 노력하는 많은 의료인이 있지만 의료의 변화를 개개인의 선의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현시점에서 노년의학적 진료를 온전히 하는데 한계가 있겠지만 워낙 큰 수요가 존재하기에 사회의 변화는 많이 멀지는 않을 것이고, 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때 필요할 노년의학에 대한 인식과 진료에 필요한 관점, 유용한 도구들을 소개하는 귀한 도움을 준다.

 

김린애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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