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복사문화,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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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복사문화, 이대론 안된다
  • 승인 2005.02.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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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판에 멍드는 한의서적 출판계
‘양유걸 전집’ 등 20여종 나돌아
양의계, 수입원서 복사 엄두도 못내

불법 복사는 어제 오늘의 일도, 한의계만의 일도 아니다. 지적재산권이 지켜지지 않는 한 학문의 발전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가 이를 관대하게 보아 넘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학가에서 불법 복사가 또다시 문제로 떠올랐다. 만연해 있는 복사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편집자 주>

인터넷의 최강국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지적재산권이나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우리나라 시장을 보며 다국적 기업인 N사의 한국 지사장 K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우수성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보호 받지 못하는 척박한 곳에서 기업과 국가 경제를 이만큼 끌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결코 칭찬으로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지식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지식을 내 놓으려 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한의계에는 임상과 관련 있는 내용은 전체 한의계에 공개하기 보다는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자”는 의식까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 마스터 인쇄에 양장 제본

지난 1992년 6월 S출판사가 D대에서 ‘경혈학총서’ 등 불법으로 복사한 책 300여권을 모아 소각한데 이어 올해 또다시 두 곳의 출판사가 한의대생 등을 저자권법 위반으로 무더기로 고발하거나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사태가 벌어져 주변을 아쉽게 하고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이러한 불법 행위가 학생이라는 이유와 ‘그럴 수도’라는 고정관념에 의해 아무런 범죄의식도 가지지 않고 관행화 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상으로 책을 구입한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법으로 복사한 책을 수거해 진정서와 고발장을 제출한 출판사들은 최근의 복사는 동료의 책을 빌려 자신이 보기 위해 하는 수준을 넘어 섰다고 말한다. “○○책 구입할 사람”하고 주문을 받은 후 책을 마스터로 인쇄하고 양장 제본까지 해 주문자에게 납품하듯 제공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법으로 제본된 책과 정품은 겉표지 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심지어 책 안에 ‘○○대 도서관’이라는 장서인까지 그대로 복사된 책이 발견 됐다. <사진>

■ 수강생 150명에 교재 7권 판매

한의대에서의 불법 복사는 정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모 출판사 대표의 “수강생이 150명인 과목의 교수가 집필한 교재마저도 단 7부만 팔렸다”는 말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의대가 있는 지방의 한 대학 앞에서 의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의 주인은 지난해 교재는 아니지만 부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고, 내용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책이 출간돼 이를 판매하기 위해 한의대 학생회를 찾았다.

학생회 임원에게 책을 보여주고 할인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더니 “이 책 다 있을 걸요?”하더란다. 그래도 주문을 받아달라고 부탁한 후 며칠 있다 그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학생의 말은 여전히 “(복사판이)다 있다는 데요”였다. 이 서점 주인은 양의대쪽 서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수입원서가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고 이 책이 불법 복사돼 서적 판매가 부실해지면 출판사 측은 대사관에 진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대사관측이 직접 검찰이나 경찰에 문제를 제기하고 곧바로 수사가 이루어진다.

불법사항이 발견됐을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국내법이 아니라 ‘국제저작권법’에 저촉돼 국제 문제가 돼 양의대생들은 불법복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내 것’에 대한 개념이 철저하다. 그래서 불법 복사 등을 적발하면 사정을 봐주는 일은 드물다. 반면 동양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극히 부족하다. 그래서 출판사측도 불법 사항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다할 대응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 “어떻게 고발을 해요?”

모 출판사 사장은 “그걸 어떻게 합니까? 학생을 고발할 수도 없고, 불법으로 복사한 책을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내도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저 복사가 덜 되기만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의사를 대상으로 책을 판매해야 되는 데 나쁜 소문만 나면 저만 손해인데 그냥 참을 수밖에 없죠”라고 말한다. 업자로서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장의 다음 말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이 출판사 책 중 하나가 여러 군데 오류가 있는 것이 발견됐지만 수정본을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내봤자 팔리지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서적 특히, 대학의 교재가 밝혀진 오류마저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한의학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모 출판사 관계자는 “한의사들이 구입하는 책값으로는 제작이나 운영비를 충당하면 그만이고, 한의대생들이 책을 사줘야 이윤이 날 텐데 그렇지 못하니 회사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라며 “어떨 때는 한의학 서적에 손을 댄 게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라고 말한다.

◇대성의학사 권오현 대표의 말 = “양방의료계나 약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하면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한의계가 잘돼야 주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노력하죠. 그러나 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의학, 한의계의 발전은 모두가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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