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회장의 재임기간 일어난 사건들을 되짚어볼 때 한의계는 모진 시련을 겪는 와중에서도 착실히 법, 제도분야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제도권 밖에서 제도권 안으로 깊숙이 편입되면 될수록 얻은 것도 많았지만 책임질 분야도 늘었다. 보건의료관련법령에서 ‘한의사’라는 이름이 하나둘 들어가 한의사의 사회적 역할은 확대되고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다.
그런 반면에 한의사 직능은 소외된 계층에서 사회적 기득권 세력으로 비춰지게 됐다. 진단의 정확성, 한약의 부작용, 치료의 효능효과, 치료비의 적정성 등이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한의학에 대한 시비는 상대 의료단체의 한의학 폄하, 말살 정책과 맞물려 증폭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영향력을 중시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실적경쟁, 방송의 일방적 보도가 사건을 부풀렸다.
한의계는 외부의 협공에 대응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자료의 부족, 해당 분야 한의사전문가의 부족, 개원의 중심의 한의계 구조에서 오는 한계, 대학·학회·연구소 등과의 네트워크 취약, 나아가서는 한의계 내부의 여론수렴을 가로막는 비민주적 조직구조 등 한의협의 문제해결능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런 한계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가깝게는 2, 3천 한의사시대의 조직과 관행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지만 멀게는 한의협 창립이래 50년간 누적된 병폐가 지난 1년간 집중 발생한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폭발한 것에 불과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양사회의 전통과 관행에 내재된 문제이자 근대사와 한국사회의 모순이 한의계로 투영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결코 안재규 집행부만의 문제도 아니며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볼 일도 아니다. 내외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한의계는 이번 사건에 내재된 교훈을 바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원인 분석이 제대로 돼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물론 평가의 주체는 한의계의 모든 구성원에 해당한다. 바른 평가가 선행돼야 차기 집행부의 성공도 기약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민족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